그렇게 나는 아무도 없는 그 절벽 앞에서 구조물에 올라타는 용기를 내버리고 만다.
구조물에 앉은 뒤 줄을 조금씩 당겨 앞으로 끌고 나가는데 절벽이 조금씩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보이자 약간 무서웠지만 그래도 일단 힘을 줘서 당기기 시작했다. 구조물이 땅에서 조금 떨어져 공중에 뜨니 슬라이드처럼 와이어를 타고 쭉 미끄러져 내려갔다. 귀를 스치는 둔탁한 바람소리와 속도감, 와이어와 구조물이 마찰하며 나는 스무스한 소리가 기분 좋게 느껴졌는데 그 기분도 잠깐,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절벽 정 중앙 쯤 공중에서 구조물이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 상태에서 바람이 많이 불어서 구조물이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는데 이 때부터 살짝 오금이 저리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와 이거 무섭네... 얼른 건너가야겠다'
처음에 당길 때는 그래도 당길만했는데, 이상하게 건너편 절벽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당겨야되는 무게를 버티기가 힘들었다.
'힘들다!'
라고 생각하며 줄을 놓는 순간, 구조물이 다시 절벽 중간쯤의 원래의 자리로 거꾸로 슬라이드 이동했다.
"어?!"
뒤통수 맞은 것처럼 이 와이어에게 느낀 배신감(?)에 치를 떨었는데, 이 와이어가 완벽하게 일자 모양으로 연결돼있다고 생갔했던게 내 오산이었다.
"와이어가.. 아래로 오목하게 늘어져있는 모양이라고?"
와이어는 절벽 중앙으로 완만하게 늘어진 U자 모양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시작할 때 와이어를 신나게 슬라이드하며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을 수 밖에!
마찬가지로 건너 편 절벽에 가까워질수록 들여야되는 힘이 점점 커지는 듯 느껴졌던 것도 구조물을 탄채로 줄을 당기며 양 팔로 오르막길을 올라가는거였기 때문이다. 거짓말이라고 누군가 말해줬으면...😨
첫 시도가 실패한 뒤에는 다시 쉬고 도전하면 되겠지~하고 쉽게 생각하고 당겼는데, 다시 실패했다. 쉬다가 당기고 쉬다가 당기고, 여러 번 실패를 겪고 난 뒤 점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며 구조물이 좌우로 점점 더 크게 흔들리는데다, 실패를 하고 줄을 내 손에서 놓칠 때 한 번 무게중심을 잃어서 절벽 밑으로 떨어질 뻔한 느낌이 크게 들었던거다. 그러면서 힘을 계속 쓸수록 몸에는 기력이 없어지고, 설상가상으로 몸이 조금씩 떨리고 온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때는 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전혀 감도 못 잡았었다. 그런데 지금인 이게 뭔지 안다.
긴장하며 온 힘을 계속 쓰니 저혈당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가 내 인생 최초로 저혈당 증상이 나타난 때다. 당시에는 뭔지도 몰라서 뭔가 이상하니 돌아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 밖에 못 했던 것 같다.
고백하건데, 당시 나는 콜린성 두드러기라는 병을 가지고 있었다(지금은 거의 나았다). 몸에 열이 나면 몸이 간지러워지는 알러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그래도 많이 나아져서 햇볕 아래에서도 잘 걸어다니고 그랬지만, 운동은 안 한지 몇 년 정도 됐었던 상태였다. 그러니 완력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는데, 이전 글을 보면 알겠지만 앞서서 이동한 사람들은 다 반대편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난 몰랐지만... 남자 둘이서 당기던걸 혼자서 당기려고 하니 힘에 부치다 못 해 저혈당으로 빠졌던 것이다.
이 때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절벽 양 쪽에서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었겠지만,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고 몸에도 이상증상이 나타나니 마냥 기다리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느껴졌다.
마지막 시도 실패 이후 다시 절벽 중앙으로 슬라이드해 되돌아내려와 쉬면서 고민에 휩싸이다 저혈상 증상이 점점 심해져 위기감을 느껴버린 나. 체감상 거의 30분 정도는 지났던 것 같은데, 건너편으로 넘어가려고만 했지 다시 되돌아가는건 한 번도 안해봤다는걸 깨닫고 공중에서 몸을 반대로 돌려 앉아 원래 왔던 절벽으로 돌아가는걸 시도해봤다. 이 것까지 실패라면 이제 답은 없었다.
다행히 한 번만에 성공...!
'하나님 알라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물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뎠을 때도 구조물이 흔들리면서 무게중심을 잃어 넘어졌고 구조물은 다시 슬라이드해서 되돌아갔는데 그 때 만약에 다리라도 끼었다면... 난 이 자리에 앉아서 글을 못 쓰고 있었겠지? 어휴.
이 때부터 다음 날 아침 키베르를 떠날 때까지 남은 사진은 없다. 온 몸에 힘이 없고 심장이 떨려서 사진 찍을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이 절벽과 목적지였던 마을의 이름과 위치를 10년이 지나도록 모르고 있었는데, 그 기간 중간중간 생각날 때 구글맵으로 찾을 때마다 실패했다. 며칠 전에도 글을 쓰며 찾아보다 포기하고 다른걸하다 실수로 어딘가를 클릭했는데 갑자기 이 와이어 구조물의 사진이 마법처럼 나타났다. 찾았다!
내가 가려던 마을의 이름은 바로 치참 Chicham 이라는 곳이었다. 지금 찾아보니 2017년, 이 절벽 사이의 와이어는 치참 브릿지 Chicham bridge 라는 구조물로 업그레이드 됐다.
치참 브릿지는 인도에서 가장 높은 다리이며, 해발고도 높이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다리라고 한다. 절벽 아래와 다리와의 높이는 150m, 절벽 사이는 114m의 길이. 내가 이름도 모르고 가려고 했던 마을과 장소가 이런 곳이었다니. 키베르와 치참 사이를 있는 절벽은 이렇게 안전하게 변했다. 다리가 지어진 2017년 주민들의 행복은 최고조였겠지?
이런 사실들을 불과 며칠 전에 알게됐고, 내가 지나왔던 곳들의 의미를 다시 이렇게 재발견한다. 내가 오줌 지릴 뻔 했던(?) 장소의 정체를 알게돼서 너무 신나고 새롭다. 나에게는 아주 야박한 장소였긴 했지만. 저 와이어를 타 본 사람의 숫자는 한국인 중에서는 한 손에 꼽을 수 있을지도? 당시에도 론리플래닛 같은 곳에 나와있던 장소는 아니었으니까.
살면서 내 몸으로 한 번도 못 느껴본 죽음이란걸 이 때 처음으로 가깝게 느꼈다. 어제 멀쩡히 살다가 오늘 없어질 수도 있는게 사람이구나. 이 날 밤은 죽음에 대해서 오래도록 생각해보는 밤이었는데, 내가 직접 선택해 들어간 경험이었지만 이 것도 다행히 잘 탈출해나와서 괜찮은거지 나는 150m 절벽 아래로 떨어져 못 돌아올 수도 있었다. 당시 한국과는 연락 자체를 안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랬다면 말 그대로 내 존재가 영영 실종돼버리는 상황이었을거다.
- 내가 가진 욕심과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가지게 된 것들은 결국 내가 세상에 없어지고 나면 다 쓸모 없어지는데, 그럼 이 세상에 남는건 대체 뭘까?
- 어쩌다가 이렇게 태어나서, 나는 무얼 우선순위로 삼아서 살아야 하지?
- 지금 내가 사는 방식로 살다가 어느 날 죽게되면, 의미가 있는건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던 밤. 미래에도 몇 번 죽을 뻔한 경험을 더 하게 되는데,
이런 경험들과 의문들이 쌓여 어느 정도 내 답을 찾게되는건 더 많은 일을 겪고 난 훗날의 일이 된다.
추후 업로드 시 이 글에 링크를 연결할 생각이니 잠시만 기다려달라.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돌아온 숙소. 이 날은 정말 아무 것도 못하고 식사하고 로프를 당기며 껍질이 다 까진 손바닥을 세척한 뒤 방에서 안정을 취했다. 다음 날 상쾌한 아침.
예기치 못 한 전쟁은 숙소 테라스에서 일어났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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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8 - [왜 여행?(Why journey?)] - 10년이 지나 되돌아본다. 여행이 무슨 의미냐 대체? -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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