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딱 보고 한국인인걸 알아챘는데(동아시안끼리는 외모만 봐도 어느 나라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것 같다), 같이 놀랬던 기억이 난다.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분도(H형이라고 칭하겠다) 카나나라 Kununurra 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일단 잡을 구하러 다니면서 숙소에 머물고 있다고 했었다. 궁금한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니, 내가 카나나라 Kununurra 에 처음 내려서 헤맨 것이 무색하게 이 주변에 가게들이 여러 곳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지금은 낮이라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나가있어서 이 곳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알고 보니 숙소 바로 앞에 콜스 Coles 라는 큰 슈퍼마켓도 있다고 했다. 아까 내가 힘들게 헤맬 때는 불과 몇 미터 차이로 내 시야 안에 슈퍼마켓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당시 숙소에는 H형을 포함해서 한국인이 딱 두 명 있다고 해서, 예상대로 이런 시골 마을에는 사람이 별로 없구나했는데, 그래도 유럽 등지의 여러나라들과 아시아에서는 대만과 일본인들이 몇 있다고 했다. 어차피 숙소에 짐을 푼 당일 날 힘도 없어서 다른걸 할 생각도 안 났고, 테이블에 앉아서 H형이랑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조용한 숙소 마당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던게 한국을 떠난 뒤 처음으로 마주한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H형한테 이런저런 마을 분위기나 소식 같은 것도 들을 수 있었고. 숙소 앞에 콜스 Coles 구경도 같이 하며 식사 준비를 했는데,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가지 식재료들이 있어서 신기한 인상도 받았고, 매장도 넓어서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저녁에는 또 다른 한국인이라는 K누나와 인사를 할 수 있었는데, H형이나 K누나 두 분 다 다행히 착하고 좋은 분들이었다. 운이 좋다는 생각도 했고,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도 몇몇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카나나라 Kununurra 의 첫 날이 저물고 다음 날, 잠을 자고 일어나니 기운이 좀 나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전 글에서 쓴 것처럼 내 수중에는 단 돈 1,000불이 다였고 그게 떨어지면 끝장이었기 때문에 하루빨리 일 할 수 있는 곳을 구해야만 했다.
전 날 H형 이야기로는 호주에서 어떻게 Job을 구하냐면, 일단 자기소개서(resume)를 들고다니면서 일하고 싶은 가게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며 자기소개서를 건네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게 비단 카나나라 Kununurra 뿐 아니라 다른 호주 도시의 워킹 홀리데이 일꾼들이 보통 그렇게 구한다고 한다. 나 정말 아는거 하나도 없네 진짜
농장 같은 경우는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보통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찾아다닌다고 하는데, 나는 차를 살 돈도 없었을뿐더러 이런 작은 마을에는 차량을 렌트할 방법도 없었다. 즉 농장에는 내가 다이렉트로 찾아가서 일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이 당시에는 없어서 약간의 곤란함을 느꼈는데, 일단은 마을을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카나나라 Kununurra 근처에 어떤 농장들이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도 했다. 굳이 농장에서 꼭 일을 안해도 됐었기도 했고.
'그럼 나도 일단 그렇게 해봐야지.'
마침 한국에서 여러 장 뽑아온 자기소개서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 막무가내로 손에 종이를 쥐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이 작은 마을을 샅샅이 돌아다녀봤는데 생각보다 가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니, 생각보다 정도가 아니라 가게를 거의 발견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서나 즐비할 법한 카페도 단 한 곳이 없었고, 지금 기억나는 가게는 샌드위치 가게 한 곳 정도?
'와 나 진짜 시골 마을로 들어온게 맞긴 맞네.'
내 소개를 하고 자소서를 주고 싶어도 돌릴 곳이 없다니.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카나나라 Kununurra 에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농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 온 여행자들이었다. 세컨드 비자 Second visa 라고 해서, 호주의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1년으로 만료되는 비자인데,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부족한 농장 같은 곳에서 3개월 이상의 기간동안 근무를 해야만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1년간 더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총 2년의 기간동안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거주할 수 있게되는데, 이걸 세컨드 비자 Second visa 라고 했다. 아무래도 호주 정부 입장에서는 워홀러들의 노동력을 농장으로 돌릴 수 있게 해놓은 조치겠지? 그래서 어쨌건 저런 이유로 카나나라 Kununurra 에 오는 워홀러들이 많다고 했다.
그렇게 이 마을을 '와 이거 큰일인데?' 하면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 내가 일할 수 있을까?
- 이런 곳에서도 사람을 뽑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곳에 지원해보는 것으로 접근방향을 바꿨다. 다른 사람들이 지원을 적게 하는 곳일수록 내가 뽑힐 확률이 높아지니깐.
일단 처음에 눈에 띈 곳은
- 경찰서
....였는데🤓
그냥 막무가내로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받아줄리가 있겠나. 지금 생각해도 어이 없는 시도였던 것 같다. 한국으로 따져 생각해보면 갑자기 경찰서에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와서 일하고 싶다고 들이대면 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볼까😂
어쨌건 그렇게 첫 시도가 대차게 까이고 나서, 바로 경찰서 앞에 있던 곳이
- 카나나라 컨트리 클럽 리조트(Kununurra country club resort)
라고 하는 리조트였다.
위의 사진처럼 생긴 입구가 보이길래, 약간 망설이며 기웃거리다가 옆에 또 다른 직원용 입구 같은 것이 보여서 '에이 모르겠다'하고 무작정 들어갔다. 경찰서보단 낫겠지😂. 그래서 살금살금 움직이다가 어떤 건물 안을 보니 작고 호리호리한 체구의 여성이 한 명 일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그 직원은 혼자서 뭔가 이리저리 세탁업무 같은 것을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혼자서 열린 문으로 살짝 지켜보다가 틈이 났을 때 얼른 들어가서
"Hello!"
를 우렁차게 외쳤다. 일하다 말고 고갤 들어 의아하게 쳐다보는 호주인 여성에게 용기를 내서 일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을 건넸는데, 이 직원도 정말 친절한 분이었던게 기억이 난다. 이 직원이 나중에 알고보니 카나나라 컨트리 클럽 리조트의 인력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관리직이었는데, 그런 사람에게 내가 우연찮게 말을 걸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직원은 웃으면서 안 그래도 사람이 마침 필요하긴 했는데, 내게 자기소개서를 남기고, 내일 다시 한 번 찾아올 수 있겠냐고 얘기를 했다.
'에?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인데?'
라는 생각에 내심 당황스러움과 기쁨을 삼키고 내 대답은 당연히 Okay. 대화 할 때 나도 최대한 밝고 또렷하게 얘기할려고 애썼다.
그렇게 다시 나는 숙소로 돌아왔는데 오는 길이 아주 얼떨떨했다. 내가 자기소개서를 돌린 곳은 딱 세 곳, ①샌드위치가게-②경찰서-③리조트 였는데 단박에 일을 구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 '원래 첫 날에 보통 이렇게 일을 구할 기회가 생기나?'
- '호주인들은 원래 자리가 없어도 매너 때문에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걸까?'
-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하는걸수도?'
- '아니 내가 저렇게 큰 리조트에서 일을 하는건가?'
등등 온갖 잡생각을 다했는데, 그렇게 하룻밤 자고나서 찾아간 다음 날.
날 보며 활짝 웃는 관리직 직원이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축하해!
이 곳에 내가 직원으로 뽑히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크,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한국에서부터 해왔던 내 추측이 완벽히 맞아떨어져서, 일을 구하기 시작한 바로 첫 날 만에, 남들은 일 구하기 어려워서 수십 수백 장씩 돌린다는 자기소개서를 단 3장만 돌리고서 일을 구한 것이었다. 그 것도 이렇게 으-리-으-리한 리!조!트!에서. 싸우-쓰 코리아에서 난생 처음 호주로 찾아온 쓰으-마트한 에이-시안인 내가🤑!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거라 생각했다😂.
한바탕의 봄 꿈,
- 일장춘몽 一場春夢 😂
-To be continued-
-블로그 소개(공지) & SNS-
-이런 곳들을 다녀왔습니다-
Wandering the Earth - Google 내 지도
Places my body&soul have b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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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2 홀리데이 워(Holiday war) 프롤로그-
그 해 여름이었다. - 호주 워킹홀리데이 Australia, Season 2 prologue
인도를 다녀왔다. 2011년 여름이었다. 나는 태양에 새까매진 채로 학교로 다시 복학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끔씩 턱이 빠져있었는데, 다행히 시간이 흐를수록 그 주기가 길어졌다. 통증도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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