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카나나라의 생활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윈 Darwin 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처음 카나나라로 올 때 구경했었던 황무지의 개미집들이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졌다. 내 다음 행선지는 호주 동북부에 위치한 해변가 도시 케언즈 Cairns 였다. 다윈에 도착한 나는 곧장 비행기를 타고 케언즈로 향했다.
케언즈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는데, 바로 그 유명한 액티비티들 때문이었다. 케언즈는 바닷가에 접해있는 도시라서 그와 관련된 액티비티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케언즈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건 그 이름도 위대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다. 이는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로서, 사람들이 케언즈에 놀러오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요즘에는 기후변화 문제로 이 곳의 산호초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 당시만 해도 그런 환경이슈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이렇게 사라질 수도 있다는게 너무나도 허무한 것... 그래도 요즘에는 사람들이 많이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해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는 모양이다.
케언즈의 액티비티는 3종으로 유명한데, 스카이다이빙 / 래프팅 / 스노클링 or 스쿠버다이빙이 바로 그 것이다. 당시의 나는 이 세 가지를 전부 다 해본 적도 없었고, 여행의 시작이라는 마음에 신이 나서 세 가지를 전부 다 해보기로 어렵지
않게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이 세 가지 액티비티에서 모두 각각의 후유증(?)을 겪게 된다.
케언즈의 도심에 가보면 액티비티로 유명한 도시답게 이를 홍보하는 투어여행사를 간간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곳에 들어가서 문의해보고 그냥 원하는 투어를 바로 신청해보면 된다. 도시 자체는 내게 딱히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라 나는 도시구경도 하지 않고 바로 투어를 신청했다.
1. 스카이 다이빙
스카이다이빙의 높이는 본인이 원하는 옵션으로 고를 수 있는데, 내가 갔던 당시에는 세 가지 옵션이 가능했던 것 같다. 나는 살면서 스카이다이빙 몇 번이나 더 해보겠나 싶어서 고도가 제일 높은 옵션으로 정했는데, 14,000~15,000ft 정도 되는 높이였던 것 같다. 보니까 4.2~4.5 km 정도되는 높이인데, 여기서 또 다른 옵션이 하나 더 있었다. 스카이다이빙하는 영상을 찍어주는 옵션이었는데,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안 찍는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돈을 조금 더 주고서라도 영상으로 남겨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니 스카이다이빙을 처음 해보는 사람이 있다면 돈 아끼지 말고 꼭 영상으로 남길 것!
그렇게 아침 일찍 재밌을 것 같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타야하는 비행기가 있는 활주로에 도착했다. 어떤 비행기를 타려나 했는데 생각보다 작은 비행기였는데, 이런 저런 준비를 마치고(사건사고가 일어나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명 등) 비행기를 올라타는 순간까지도 무섭기보다는 두근거리기만 했다(번지점프도 해본 적 없음 / 바이킹 못 탐).
'하늘에서의 자유낙하는 어떤 기분일까(두근두근)?'
그렇게 내 담당 호주인아저씨와 2인 1조로 맞춰 앉은 뒤 비행기가 활주로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륙하는건 금방이었다. 경비행기의 옆문이 열려 있어 땅과 멀어지기 시작하는게 실시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확히 3초 뒤에 나는 생각했다.
진짜 미칠듯이 무서웠다. 아니 이렇게 실시간으로 문 열어놓고 하늘로 올라가기 있습니까? 세상에, 땅을 쳐다보기도 못 할 지경이었다. 여기서 문 밖으로 뛰어내린다는 생각을 하니 앉아있는데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고 심장이 미칠듯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 안 뛴다고 하면 혼날까...?'
더 무서운건 '이 정도면 다 올라왔겠지... 앗 아직인가? 그래 이 정도 높이면 됐겠지...? 아니 아직도?' 라는 과정의 반복이었는데 4km 넘게 올라간다는건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게 멀게 느껴졌다.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준비가 다 되었고 이제 뛰어내리면 된다고 하는 말이 들리자마자 마음 속으로는 살려달라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 여기서 대체 어떻게 뛰어야하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내 뒤에 같이 붙어있던 스카이 다이버 아저씨가 1초도 안 망설이고 날 밀다시피하며 옆 문으로 박차고 뛰어내렸다. 어째서 제 의견은 안 물어보시는거죠 아저씨...? 카운트는요...?
눈을 질끈 감고 1-2초 정도 지났을까? 공포심도 잠깐, 자유낙하에 적응하는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자유낙하는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하늘에서 자유롭게 낙하하는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온 몸에 바람이 휘감기는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케언즈에서 하는 스카이 다이빙이 다른 곳에서 하는 것보다 특별한 이유는 바로 위에서 이야기했던 바다에 펼쳐진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게 펼쳐진 바다 위로 산호초 지대가 말도 안되게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지구의 경계선이 미묘하게 둥글게 휘어져 있는 것도 보였다.
'이래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구나'
활강하는 그 1분 남짓한 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졌는데, 한 번 해보고나니 무서워했던 내가 우스웠다. 스카이 다이버 아저씨의 안내와 함께 활강이 끝나고 낙하산이 펼쳐졌는데, 그 때부터는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패러글라이딩 같은 것도 타본 적이 없어서 속으로 '오 자유낙하도 하고 낙하산도 타보네'라고 팔자 좋게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오래 가진 않았다. 왜냐면 멀미가 시작됐으니까...🤮
아저씨가 낙하산의 조종키를 잡고 "좌우로 움직여봐~"라고 해서 몇 번 움직였더니 단박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손으로 가리키며 바다에 돌고래 떼가 있는 것 같다고 구경하라고 하는데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3D 안경을 끼고 VR 시뮬레이터를 보는 것처럼 눈이 좌우로 무지하게 흔들려 어지러웠다.
그래서 결국 중간에 눈을 질끈 감기도 하고 조종키는 그대로 고정시키고 그대로 땅에 착지했다.
스카이다이빙...쉽지 않네😠 그래도 자유낙하 1분 했으니깐 됐다😂.
2. 래프팅
케언즈에서의 래프팅은 보통 두 가지 장소로 나뉘는데, 배론강 Barron river, 털리강 Tully river 가 바로 그 곳이다. 래프팅의 등급은 또 6개로 나뉘어진다고 하는데 1등급이 가장 쉬운 것, 6등급이 가장 어려운 단계이며 이 중에서도 일반인이 즐길 수 있는 최고 등급은 4등급이다. 나는 털리강 래프팅을 선택했는데, 이 털리강이 지금 찾아보니 4등급이라고 한다(오늘 알았다). 내 기억엔 당시 래프팅을 홍보하던 문구에 Extreme 어쩌구가 붙어있어서 '한 번 할거면 제대로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제일 어렵다는걸 고른게 털리강 래프팅이었다. 이 때 당시만 해도 나는 물 무서운줄 모르는 꼬맹이었는데, 수영도 못 했다🥴. 내가 가졌던거라곤 호기로움 하나 정도...?
이 털리강이 위치한 곳이 Tully gorge 국립공원 안이라는 것 같은데, 이 곳이 또 세계자연유산 열대우림에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당시 자연풍경을 구경하는걸 좋아하던 내게 구미가 당기는 옵션이었던게 당연지사. 그리고 여기가 또 세계 3대 래프팅 장소라고 한다.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이동한 툴리강에서 래프팅은 시작되었는데, 우리 팀은 강사 한 명과 4인 1조가 한 팀이 되었다. 이 날도 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놀이를 할 생각에 신이 나있었는데(...) 처음 시작은 잔잔해서 팀원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하고 웃으면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내 웃음이 사라지기 시작한건...😂
첫 몇 번의 급류는 패들링도 하고 이리저리 튕겨나가기도 하면서 그래도 나름 재밌다고 할 수준이었는데, 흘러갈수록 날 반겨주는 급류들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급류를 흘러내려가는 것보다 보트가 뒤집어져서 강물에 빠지는게 너무 힘들었는데, 내가 수영을 못 하다보니 물에서 숨 쉬는 법을 몰라서 진짜 죽을 것 같았다. 그걸 한 번 겪고나니(래프팅 시작 초반부에 바로 느꼈다) 급류가 다가올 때 뒤집어져서 물에 빠질 것 같은게 너무 무서웠는데 뒤집어질 법한 곳에서 어떻게 잘 해서 안 뒤집어지면 강사가 일부러 보트를 뒤집기도 했다.
급류가 너무 세서 이리저리 내 몸은 종이인형처럼 물 속에서 휘날려 공포심이 날 뒤덮는데 다른 사람들은 재밌다고 웃고 있고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나... 생각보다 나약할지도...? 그리고 내가 물 속에서는 쪽도 못 쓴다는걸 이 때 처음 깨달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영 배우기가 내 버킷리스트에 추가되었다(살고 싶어서). 그리고 아직까지도 수영 안 배운걸 이 글을 쓰면서 반성하는 중😀
그래도 열대우림으로 유명한 곳 답게 잔잔하게 보트가 흘러갈 때 둘러본 주변 풍경은 느긋하고 아름다웠다. 절벽에 늘어내려져있는 나무들이 이 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주변을 둘러있던 하얀 나무들이 꽤나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는데 그 풍경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지금 찾아보면서 알게됐는데, 2009년에 한국이 두 명이 이 곳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암석에 부딪혀 뒤집히며 돌 무더기 틈에 끼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인데 지금 이 때 기억을 또 떠올리니 다시 무서워진다.
그렇게 인생 첫 털리강 래프팅이 내게 남겨준 것은 엉망진창 후들거리는 다리와 물 공포증이었다. 물 먹는건 심하게 배부르고, 빠져 죽는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내가 가끔씩 안전이 제일 최우선이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이 때부터가 아마 시작이었을거다.
3. 스노클링
케언즈에서 배를 타고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근처 쪽으로 가서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바다 속에서 하는 액티비티가 세계적으로 엄청 유명하겠구나 싶다. 나는 그 중에서도 스노클링을 선택했다. 당시에 물 속에 들어가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곳의 스노클링 투어는 큰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서 보트를 띄운 채로 주변가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것이다. 수중 액티비티도 이 때가 처음이었는데, 투어사에서 제공해준 스노클링 마스크도 내게는 참 신기했다. 날씨는 약간 흐려서 비가 조금씩 내렸고 바람도 조금씩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차피 배 바로 주변에서 하는거라서 별 걱정은 없었는데, 날씨가 그래선지 내가 요령이 없어선지 모르겠는데 물고있는 마스크로 바닷물이 계속 들어와서 스노클링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날 내가 처음 알게된 사실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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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처음 도착해 어영부영 자고 일어난 날, 내 턱이 벌어지지 않는 신세계를 겪었다. 아니 그 수준을 떠나서, 턱을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찾아오는 격통이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통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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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에 인도여행을 갔었을 때 턱이 빠진 적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간간이 자고 일어나면 턱이 빠져있는 경우가 있었지만 익숙해져서 별 생각 없이 살고 있었는데, 이 날 스노클링을 하면서 마스크를 오래동안 물고 있으니 턱 통증이 점점 심해지며 더 이상 물고 있지 못 할 지경까지 갔다. 턱 빠졌던 후유증으로 무언가를 힘 주어 오래 물고 있지 못 하게 됐다는걸 이 날 알게됐다.
결국 처음에 조금 해보고(그마저도 제대로 못 하고) 나중에는 그냥 바다 속을 보는건 포기하고 구명조끼를 끼고 둥둥 떠다니기나 해야겠다고 마음 편히 먹고 있었는데, 비가 점점 더 거세지더니 나중에는 파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것이다. '이거 괜찮을걸까...?' 라는 생각을 할 때 쯤 결국 보트에서 다시 돌아오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바로 그 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됐다.
고래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건 정말로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 바다에 둥둥 떠있던 내 바로 앞 수 십 미터 거리에서 예상도 못 한 채 고래가 바다 위로 점프 하는걸 보니 아픈 턱도 잊은 채 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걸 보며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공포심 비스무리한걸 느꼈다. 사이즈도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는데, 먹구름이 껴 어두워진 하늘 아래 비를 맞으며 온 몸이 거친 파도에 휩쓸리던 중 우연히 본 그 장면은 뇌리에 확실하게 꽂혀있다. 이 순간의 모든 환경이 마치 이 고래와의 만남을 극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장치 같이 느껴진다. 모험 만화의 한 장면처럼 내게는 기억되고,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의 감각적 이미지로 연결된다.
고래의 점프는 딱 한 번이었지만, 배 위에서 그걸 구경하는 것과 바다 속 바로 옆에서 그걸 보는건 참으로 다른 느낌일 것이란걸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떤 생명체에게서 영험함을 느낀 것은 살면서 딱 두 번이었는데, 이 때가 그 첫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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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에게서 영험함을 느낀 중 두 번째]
숨 쉬는 것도 잠시 잊은 채 정신 차린 뒤에는 이미 고래는 떠나고 없었는데,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신원미상의 고래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때 이 경험은 미래에 내가 또 고래를 보겠다고 배를 타도록 결정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험한 날씨 때문에 결국 보트는 다시 케언즈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결정됐는데, 나는 이 때도 바다를 온 몸으로 느끼겠다고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는 보트 선미에서 바닷물을 흠뻑 뒤집어쓰다가 또 다시 찾아온 멀미에 선내로 들어와 골골거리는 것으로 스노클링은 마무리지었다.
케언즈는 3대 액티비티로 유명하다. 나는 이걸 3대 지옥(...)으로 표현한다. 스카이다이빙에서 멀미를, 래프팅에서는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스노클링에서는 턱 후유증과 또 다시 멀미를.
그래도 그 지옥 속에서 하늘을 활강하며 지구의 지평선을 내려다보는 감동, 고래라는 존재에 온 몸이 쭈뼛거려지는 경외감, 물 속에서 나의 하찮음을 느꼈다.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다. 새로운 감각들이 확장되며 내 세계관을 넓혀주고, 갈 수 없었던 영역에 다시 새로 발을 내딛게 한다. 모두 나를 갈무리하고 제대로 인식하는 과정이려니.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