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맛을 더해주는건 MSG다.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들주는건? 언어다. UN에서 공식언어로 지정된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 이렇게 6 가지 언어인데,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전 세계에서 공용으로 배우는 영어를 선택하는게 베스트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다들 학교 다닐 때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나? 한국의 공식 교육 과정을 마치고나서 영어를 말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영어를 말하는 건 인도에 와서가 살면서 처음이었다. 인도도 한 때 영국의 지배를 받았었기 때문에 인도인들은 그 특유의 악센트로 영어를 구사한다(그러나 힌디어로 서로 대화한다.). 영어로 대화하는걸 그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느낌? 나는 굉장히 어색해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로컬주민들 뿐 아니라 전 세계 각 국의 수 많은 여행자들과 마주쳐 이야기를 해야될 때가 많다. 영어를 잘 못한다면 그럴 때마다 외톨이가 된 느낌을 많이 받을거다. 적응하기도 어려울거고, 불안하기도 할거고, 그러다보면 같이 놀기도 어렵고. 보이지 않는 장벽 같은게 느껴질거다. 내가 그랬다. 그러나 롤플레잉 RPG 게임에 스토리가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여행이란 게임에 언어가 붙으면 그 여행의 스토리는 자연히 훨씬 몰입감 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장대한 서사가 된다.
멜라니는 독일의 영어교사였다. 그 것도 갓 대학교를 졸업한 신입교사. 그래서 그녀는 학생들을 가르치러 첫 직장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인도여행을 온 것이었다.
"영어교사였구나! 나 영어 잘 모르는데, 이것저것 물어봐도 돼?"
"당연하지. 너처럼 나도 가르치는걸 연습해야 돼."
"넌 왜 교사가 되고 싶었어?"
"나는 누군가를 교육하고 가르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좋아하기도 하고."
"처음인데 긴장되진 않아?"
"약간 긴장되지. 잘 해보고 싶어."
이 때가 아마 인도에 온 지 대충 2주 정도 지났을 때 였던 것 같은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영어로 표현하지 못 해 쌓인 궁금증과 답답함은 이미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했을 때 생겼던 질문들의 숫자를 압도하고 있었다. 실생활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몸으로 체감하니 오죽했겠나. 머릿 속으로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들어오는 호기심들로 몇 시간 동안이나 멜라니와 대화를 나눴고, 멜라니도 지치지 않고 내 모든 질문들에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대답해주었다.
- "F랑 P 발음은 어떻게 구별해야 돼?"
- "Can이랑 Could는 무슨 차이야?"
- "Must랑 should는?"
- "R이랑 L을 어떻게 발음해야하는지 모르겠어."
- Etc... 수 십 가지의 질문들.
이 단 몇 시간의 농축된 대화가 내가 가진 영어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더듬거리며 말하는 내 질문을 멜라니는 다 알아들었고, 또 차분히 설명해줬다. 나도 그 설명들을 천천히 이해했다. 머리는 엔진이 팽팽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지경으로 굴렸던 기억이 난다.
이 때 나는 언어는 단지 수단일 뿐이고, 우리의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버렸다. 상대의 표현을 이해하려고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이면 이해할 수 있다. 언어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다. 그게 핵심이었다. 스피티 밸리로 오던 긴 시간 동안 날 무시했던 러시아 여행자 때문에 내가 영어를 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핵심은 그게 아니었던거다.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할 순 없다. 그러나 전 세계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한다. 한국에도 사투리가 있는 것처럼, 영어도 한국식 악센트가 있어도 된다. 작은 섬나라 영국 안에서도 악센트가 나뉜다. 영국인들은 미국인들이 쓰는 영어더러 '잉글리쉬'가 아니라 '아메리칸'이라고 한다. 영국인이 나랑은 멀쩡히 대화하는데 호주인에게 제발 영어로 이야기해달라고 하는 것도 본 적 있다. 그러니 이걸 보는 여러분들 중 비슷한 불안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좀 틀려도 되니 기죽지 마라. 우리는 당당히 K-잉글리쉬를 구사하면 된다.
단! 제대로 된 발음은 아는게 좋다. 하얀색은 '화이트'라 하면 못 알아듣는다. '와이트'라하면 알아듣는 식이다. 직접 듣고 부딪히면서 알게되는 발음과 표현들은 머리 속에 남도록 따로 저장하거나 바로 Copy해서 사용해보면 그게 베스트다.
이 날의 깨우침은 훗날 내 여행들과 호주의 생활에도, 언어 습득력에도, 그리고 대인관계 스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미래에는, 1년이 넘도록 공부하기도 하는 Academic한 영어 스피킹 시험의 기준을 나는 별다른 공부 없이도 통과하게 된다. 긴 시간 여행을 다니며 어느 시점부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내가 제일 말을 잘 한다고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은 날 위해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주며, 열정적이었던 신입 교사 멜라니 덕분이라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한다. 멜라니를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내 모든 성의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소설 '데미안'의 구절을 빌어 이 경험을 표현하고도 싶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은 이름은 아브락사스.
언어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핵심 목적이란 것을 꼭 기억해두자. 바디랭귀지로도 대화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공부는 언제나 필요한 법. 새로운걸 흡수하고 배우려고 하는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멜라니. 내가 만났던 최고의 선생님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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