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처음으로 인도 델리 Delhi 에 도착했을 때와는 완연히 다른 기분이었다. 첫 날에는 처음으로 턱이 빠졌을 정도였으니까. 나중에 한국에 와서 알아보니 긴장하면 빠질 수도 있다고 그러긴 하더라.
- 지저분하게 흩날리는 쓰레기들
- 무섭게 달려들던 호객꾼들
- 길거리의 부랑자들
- 숨이 막힐 정도로 더럽고 후덥지근한 공기
- 먼지에 따가워지는 눈, 만지면 검게 묻어나는 코
- 툭하면 사기를 치려고 하는 로컬 주민들
- 베드버그로 가득한 더운 방
인도 델리 Delhi 의 첫 인상은 세상의 안 좋은 것들은 여기에 다 모여있고 악의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도시.
'혼란'이라는 단어가 도시가 된 것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여행을 다녀보고 델리 Delhi 로 돌아오니 느껴지는게 전혀 딴 판이었다.
- 여느 사람들과 같이 아침에 출근해서 장사하는 사람들
-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짜이와 라씨를 마시는 사람들
- 어리숙하게 거짓말하는게 눈에 보이는 릭샤(인력거)꾼들
- 신기하게 길가를 걸어다니는 소들과 앉아있는 개들
- 가게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혼자서 식사하는 사람들
- 길바닥에서 헤나를 새겨주는 사람들
- 웃으며 걸어다니는 여행자들
모두 내가 처음 델리 Delhi에 도착했을 때는 보지 못 했던 것들이었다(여전히 더럽긴 했지만😅)
도시는 언제나 그대로였고, 단지 내가 변했던 것이다.
그 것은 정말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내가 이런 혼잡한 대도시에서 그런 것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델리 Delhi에서 마날리 Manali 로 이동할 때, 그리고 마날리 Manali 에서 머무를 때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있었다. 마음 속에 불안이 사라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쩌다 호기심에 스피티 밸리 Spiti valley 여행을 시작으로 혼자 다니게 되고, 아는게 없어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수없이 질문하게 되고, 긴 이동시간 옆자리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고, 멜라니를 만나 영어와 존중을 배우게 되고, 죽을 뻔한 경험도 해보고, 현지인들과의 대화를 해야 남들 모르는 여행지를 가볼 수 있다는 것도 알게되고, 현지인들의 관심과 호의도 받아보기도 하고, 여행자에게 큰 도움을 받아보기도 하고, 내가 사는 방식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느껴보기도 하고.
그 과정들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이 열리고 불안함이 걷혀지고 약간의 내면적 숙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창문이라고 하는 내 눈으로 보는 델리 Delhi 의 모습과 인상도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첫 여행지였던 인도에서 얻었던 나의 하찮은 통찰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서 얻었다. 여행자든 현지인들이든, 또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든 갈등을 느끼는 것이든. 그러면서 깨달은 내게 해당되는 여행의 정의 중 하나.
여행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보면서 학습을 한다. 간단한 동화부터 어려운 철학 서적까지, 책이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것이다. 나에게는 사람을 만나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책을 한 권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몰랐던 관점과 태도, 자세,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삶은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머리 속에서 그 것들을 천천히 굴리며 생각을 하며 시간이 꽤 걸리지만 그들의 방식을 이해하고 학습한다. 완전한 타인에게서 조금 더 나은 나를 발견하는 것은 꽤 괜찮은 경험이다.
그럼 나는 이 곳에서, 좀 더 세세하게 말하자면 첫 여행에서 무엇을 생각했나?
1.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당시 나는 갓 대학교를 들어간 신입생 역할의 포지션 정도였고, 적응이야 잘하고 다녔지만 나이라던가 사람의 유용성 정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태도 따위의 것들에게서 오는 피로도가 있었다. 인도에서는 현지인들 뿐 아니라 한국인을 포함해서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서로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정해진 것들에 따라서 너는 이렇게 행동해야 돼' 같은 것들에 의구심이 있던 나라서, '그러는 당신은 왜 그렇게 안하는걸까' 같은 생각도 가끔 했었다. 내게는 청개구리 같은 기질이 있는걸까🤔? 책임과 권리는 항상 동반되기 때문에, 권리만 챙기려는 사람들은 내 눈에 부당한 이득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보이기도 했었다.
사람vs사람 보다는 직급과 서열에 따라서 말투가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알고있는 상태로 인도에서 만났던 이들과의 대화는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에 그 사람의 백그라운드를 알 필요가 없는 대화들이었다. 서로 궁금해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것들 말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는걸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흥미롭고 때로는 유익하기까지 하다.
서열이나 직급에 따라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암묵적인 분위기 같은 것들이 없는 것도 좋았다. 눈치랄까? 당신이 나보다 더 많이 살았다거나 돈이 더 많다거나 해서 나에게 어떤 대우 같은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내가 다른 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이래야되고, 나는 저래야되고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당신과 나, 사람 A와 사람 B로서 서로를 대하는 감칠맛이랄까. 그런 것을 첫 여행에서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옳은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른 것일 수 있는게 역시 맞구나. 좁은 세상, 나는 우물 안 청개구리다.
2. 매너ㄹ 메이킼쓰 맨 [Manner maketh man].
근래 들어 싸이로 시작해 기생충, BTS, 오징어게임으로 글로벌하게 연달아 터지는 한국의 문화컨텐츠들을 보면 놀라울 뿐이다. 이런 일이 이렇게 계속 생긴다고? 몰래카메라를 하는게 아닐까?
한류문화가 2021년 현재 이렇게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내가 인도에 갔었던 2011년은 이렇지 않았다. 좀 안 좋게 말해보자면 일종의 문화사대주의 같은 것이 있다고 느꼈는데, 서양인들의 문화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서양인들도 우리나라에서 한국어 사용은 커녕 매장에서 당당하게 영어로 주문하는 것에 사람들이 쩔쩔맨다는 등의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고.
내가 인도에 갔었을 때는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도, 외국인들에게 노출되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기 때문에 초반에 위축되고 의기소침했었던 기억이 난다. 긴장해서 턱이 빠질 정도였으니까. 내가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무시를 받는 경험도 했었다. 우리가 항상 배우는 것처럼, 영어는 세계 공용어니까, 못하는 사람이 약자의 입장으로 전락해버리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너는 영어를 못 하니까 무시를 받는거야' 에서 '너'가 내 담당이었던거고.
그러나 천운으로 멜라니를 만나게 됐고, 그 생각은 싸그리 바뀌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영어를 잘 하고 말고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 어나더 레벨 Another level 에 있는 개념이었다.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문제였다. 당신이 소유한게 그 어떤 것이든,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존중해줄 수 있다고 멜라니는 태도와 행동으로 말해주었다. 굳이 언어 문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상대방이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빌미 삼아 무시하고 상처를 주는 것은 옳지 않았다. 이제 나는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을 보면 항상 내가 올챙이였던 시절을 떠올린다. 꼭 클래시 Classy 한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기본은 해야한다. 영화 킹스맨에서 유명한 명대사도 있지 않는가.
Manner maketh man.
정말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3. 유한한 인생이 주는 의미는 뭘까?
이 블로그의 공지사항에도 적어놨지만 블로그의 시작은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나는 이 첫 여행에서
'지금 나는 죽는다.'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했다. 말할 것도 없이 소름끼치고 무서운 시간이었고, 그런 순간은 예기치 않은 타이밍에 찾아온다. 생각을 길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일상 속에서 그냥 갑작스럽게. 자살시도를 하고 살아난 사람이나, 암투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완치된 사람들의 인생관은 살아난 시점 전후로 완전히 뒤바뀐다고들 한다.
나도 그 비스무리한 것을 느낀다. 인생은 유한하다. 그 사실이 어지간하면 잘 체감되지 않는다. 나도 그냥 우연히, 그러나 갑작스럽고 긴박하게 느꼈다. 체감하고 난 뒤에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리네 삶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간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조급한 것인지, 아니면 상관없이 모두들 조급해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잠시 왔다가는 삶을 어떻게 보내야할 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이 생기고 깊어질 뿐이다.
복수를 하는 것도, 반대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도 맞는 것 같다. 고통을 감내하고 최대한 많은 것을 성취하는 목표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도, 가정을 꾸려 단란하고 편안하게 일상의 행복을 지향하는 삶을 사는 것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또 그런 삶들이 서로 대척점에 있는 삶들이 아니기도 하다. 정답이 없는게 정답인걸 알게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물론 이 것도 정답은 아니다.
첫 여행에서 이런 것을 겪고 고민을 꾸준히 하는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대중적인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내 첫 여행의 경험으로 이런 고민의 씨앗이 내 안에 심어졌다. 10년여가 지난 지금은 씨앗이 다 자라난건 아닌 것 같고, 조그맣게 귀엽고 하찮은 싹이 틔워진 정도?🌱👋
4. 불안과 스트레스의 존재이유는 뭘까?
불안은 불안이기 때문에 불안이다. 내가 인지하는 불안은, 실존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서 개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불안을 만드는 것은 상황과 환경이 아니고 내 자신이다. 환경이 바뀌는 것에서 오는 흥분과 두려움은 항상 공존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무언가를 학습하는 것에는 꼭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고, 이후에는 익숙해고 쉬워지게 되는게 루틴이다. 내가 하는 시도들에서 거절당하는 경험도 필수다. 실패 없이 다 자란 어른이 있을까? 몇 번 그러다보면 거절도 익숙해지고, 불안도 다룰 줄 알게된다. 항상 첫 삽이 제일 푸기 어렵다.
새장 안에서 자유를 빼앗겼지만 안전을 보장받는 새는 위험에서 안전하다는 사실에 기뻐할 지, 아니면 박탈된 자유에 고통을 겪고 있을 지 나는 모른다. 맞고 틀리고가 어디있겠나. 어디까지나 개인 기호의 문제일 뿐이라 생각한다. 첫 여행을 인도로 가기로 선택한 것도 나였고, 첫 날부터 빠져버린 턱과 또 끝 없는 불안과 싸워야되는 것도 그 선택의 결과였다. 빠져버린 턱을 내가 스스로 넣어야 했던 경험도 아주 짜릿했고(무식했지만).
하루하루 시간은 흘렀고, 그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곧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감정으로 변해갔다. 새로운 것을 겪는다는 것은 곧 거시적인 관점에서 불안과 스트레스를 핸들링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감정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건강한 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작은 깨달음 하나의 시작은 여기로부터였다.
불안과 스트레스는 내 인생에서 필연적이다.
안정과 불안은 마치 손등과 손바닥과 같다. 다른 면이지만 어쨌건 한 손, 한 몸이다. 이 뒤집기 게임을 잘만 해주면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 같은 것들은 흥분과 기대감, 설레임 같은 것들로 치환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나는 느꼈다. 특히나 인도는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사람들의 경제력수준과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대조되는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가 좀 더 박력있게 다가오는 나라라서 이런 고민거리를 강하게 던져줄 수 있었다. 우리네 삶과 다른 무언가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델리 Delhi 에 내리자마자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인도에서 부정적인 감정들을 극복하는 경험을 익스트림하게 한 번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후의 삶에서도 여행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여행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쌓여 후에 이 때가 첫 시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말 작지만, 나에게는 의미있는 첫 걸음이었다. 나중에는 이런 관념이 '그런가...?' 에서 '그렇구나.' 로 변하게 된다.
글 다 쓰고나니 남들이 보면 드럽게 재미없겠다 싶은게 내 솔직한 심경이다. 그러나 내게는 꼭 남겨야 하는 글이라서 써냈다. 인도여행 가지마라는 제목도 그냥 가려면 가고 말려면 말아라는 생각으로 지었다. 인도여행을 강력하게 권유하고 싶지 않다. 내가 뭐라고 그런걸 강요한담?
굳이 인도를 안가도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지구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세상은 항상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과 깨달음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그리고 똑같은 경험을 해도 느끼고 배우는 것은 다 다를거니까. 또 굳이 내가 배운 것들을 여러분들이 똑같이 배울 필요도 없다. '세 얼간이'의 란초가 말했다.
All is well.
같은 문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다.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내 인도 여행은 여기서 끝이다. 내 어린 날 이런 생각과 사유들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경험들에 감사한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2011년 8월이 끝나가는 인도 델리 Delhi 의 편안해진 밤. 나는 달그락거리는 턱을 가지고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Season 1 e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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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들을 다녀왔습니다-
Wandering the Earth - Google 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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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 에세이의 Intro-
2021.09.28 - [왜 여행?(Why journey?)] - 10년이 지나 되돌아본다. 여행이 무슨 의미냐 대체? - Intro
10년이 지나 되돌아본다. 여행이 무슨 의미냐 대체? -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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